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슬럿라이드(Slut Ride)’ 시위 참가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미몬스터즈 제공
‘내 몸은 포르노가 아니다.’
지난 2일 오후 5시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여성들의 몸 곳곳에는 빨간 립스틱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브래지어, 짧은 반바지, 배꼽이 보이는 상의 등 이른바 ‘야한 옷’을 입은 이들이 탄 자전거에는 ‘성폭력의 원인은 옷차림이 아니다’는 팻말도 달렸다.
여성인권단체 페미몬스터즈는 이날 한강공원에서 ‘슬럿라이드(Slut Ride)’ 시위를 열었다. 페미몬스터즈는 지난해 5월 발생한 이른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단체이다. 주최 측은 “성폭력의 원인은 피해자의 옷차림에 있지 않다.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아 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짓을 멈춰야 한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2016년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9.3%가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도 48.7%에 달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슬럿라이드(Slut Ride)’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의 몸에 ‘내 몸은 내 것’ ‘뭘 봐’라는 글이 빨간 립스틱으로 쓰여져 있다. 페미몬스터즈 제공
한강공원에 모인 10여명의 여성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한 채 한 시간 가량 한강공원의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이후 이들은 공원 내 공용화장실 앞에 경찰이 붙여 놓은 ‘몰래카메라 신고가 예방입니다’이라는 스티커의 ‘신고가 예방’이란 문구 위에 ‘촬영은 범죄’라고 적힌 종이를 붙이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브래지어 10개를 이어 만든 줄넘기를 타 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요 ‘꼬마야’를 개사해 “잡년아. 잡년아. 마음대로 입어라. 잡년아. 잡년아. 싸워서 이겨라. 몰카범죄 성폭력, 잘 가거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페미몬스터즈 측은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과 잣대를 벗어던지고 쓸모가 없어진 브래지어를 뛰어 넘자’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강에 나온 시민들 중 일부는 “과격한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지만 또 다른 시민은 “당당한 모습이 멋지다”며 이들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날 슬럿 라이드 시위는 슬럿워크(Slut Walk)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성들이 일부러 속옷 차림 등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길거리를 행진하는 슬럿워크(Slut Walk) 운동은 2011년 4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 그해 1월 캐나다 토론토의 한 경찰관이 요크대에서 여성안전 강의를 하면서 “성폭행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Slut) 같은 옷차림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자 여성들이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행사가 ‘잡년행진’이라는 이름으로 2011년 7월 처음 열렸고 이후에도 수차례 개최됐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슬럿라이드(Slut Ride)’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이 붙여 놓은 ‘몰래카메라 신고가 예방입니다’이라는 스티커의 ‘신고가 예방’이란 문구 위에 ‘촬영은 범죄’라고 적힌 종이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페미몬스터즈 제공
자전거를 타는 방식의 시위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페미몬스터즈 관계자는 “여성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복장이 간소화되는 등 자전거가 여성 해방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한때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면서 “여성 인권과 관련해 상징적인 면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013년 4월까지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을 금지했다.
페미몬스터즈 이지원 활동가는 “여성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옷이 간소화되고 활동이 편한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시각이 있다.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자전거 타는 활동을 통해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