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페미니스트 정당 준비모임 ‘페미당당’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다양한 시위·퍼포먼스로 주목받아
‘여자’에겐 지옥같은 세상, 페미니즘은 “생존 투쟁”
“더 강한 정치적 결사체로 발전...여성운동의 든든한 기반 마련이 목표”
▲ 지난 6월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강남역 10번 출구’ 등 여러 페미니즘 단체가 홍대 부근에서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공동행동’ 시위와 행진을 하고 있다. ©페미당당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Because it is 2015)!” 2015년 11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말한 ‘남녀동수 내각을 구성한 이유’다. 정치 영역의 성평등은 오늘날 당연한 흐름이 됐다. 전 세계 여성의원 비율은 1995년 11.3%에서 지난해 22.1%로 10년간 약 2배 늘었다. 오는 8일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다면,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또 다른 주요국 여성 정상이 탄생한다.
그러나 일련의 흐름은 “한국 정치에선 볼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라는 한탄도 나온다. 정치 보수화 경향 속에서 주류 정당의 성평등 정책 공약은 축소됐다. 젠더 의식 없는 선거 전략이 횡행했고, 젠더정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정당마저 여성혐오·성폭력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정의당 ‘중식이밴드 사태’, 당내 성폭력으로 인한 노동당 여성당원 집단 탈당 사태 등은 여성들의 실망감을 부채질했다.
이런 가운데 “어디를 뽑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러면 그냥 우리가 만들자’며 농담 반 진담 반”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정당 준비모임을 결성한 20대 여성들이 있다. “페미니즘을 기조로 하는 정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얘기하다가 창당하게 됐지요. 언어유희처럼,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해 온 ‘페미당당’이다.
지난 5월 말 페미당당 회원과 일반 참가자 60여 명은 강남역 일대에서 근조 리본을 두른 영정 크기의 거울을 들고 행진하는 ‘거울 행동’을 펼쳤다. 살해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한편, 한국 여성 누구나 혐오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다. 6~7월엔 페이스북 페이지 ‘강남역 10번 출구’ 등 다른 페미니즘 단체와 함께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공동행동’ 시위, 넥슨이 ‘메갈리아 티셔츠 성우 부당교체’ 사태에 항의하는 반여성혐오 시위 등에 나섰다.
최근 페미당당은 다시 여성계의 현안으로 떠오른 ‘낙태죄 폐지’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15일과 29일엔 여러 여성단체와 함께 서울 보신각 일대에서 여성의 재생산권을 요구하는 한국판 ‘검은 시위’를 주최했다. 시민 수백 명이 참여했고 언론의 관심도 집중됐다. 아일랜드, 폴란드, 아르헨티나 등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과의 연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등 14개 여성단체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시위’를 열고 종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 페미당당이 공개한 폴란드 페미니스트들의 지지 메시지. ©페미당당
이들은 페미니즘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신속하게 대응하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여론 형성을 주도했다. 인터넷 밈(meme·온라인상 인기를 끄는 텍스트·이미지 등)을 재치있게 활용한 피켓팅, 참신한 퍼포먼스 등도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호응을 얻었다. 조직의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회원들 간 평등한 논의를 거쳐 의사 결정을 한다. SNS를 활용한 신속한 의견수렴도 페미당당의 강점이다.
페미당당은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많은 지지와 성원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여성운동을 이끌어나가는 단체에 대한 열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어떤 위대한 사명감이 아니라 ‘답답하니까 내가 뛴다’라는 심정으로 시작했고, 아무도 이것을 장기적으로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6개월 활동했을 뿐인데 언제부턴가 ‘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스트들의 대표 단체로 호명되고 있네요.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까 우리가 뛴다’라는 심정으로 뛰고 있습니다. 조금 힘들지만, 보람이 큽니다.”
지속가능한 페미니즘 운동을 꿈꾸지만, “자원이 부족”하다는 고충도 토로했다. “윗세대 페미니스트들의 기록은 전수되지 않고 끊어졌습니다. 엄청난 기세로 활동하던 단체들도 지금은 해체되거나 추진력을 잃은 상태입니다. 2016년 현재 한국 여성운동의 가장 큰 약점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보운동 판에서조차 남성 중심주의적인 사고와 체계가 공고합니다.” 이들의 당면 과제는 “다 함께 힘을 합쳐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을 기반과 든든한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반동적 여성혐오·폭력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을 ‘남성혐오자’로 낙인찍어 사회적 압박을 가하거나 명예훼손을 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한 페미당당의 견해는 간명하다. “사회는 구성원들의 100% 동의를 완벽하게 얻어야만 진보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더 인간답고 가치 있게 살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위해 싸울 경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툴툴거리거나 빈정거리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선례를 통해 얻은 대처 방법은, 그냥 새롭게 바뀐 사회에서 살아가는 후대에 조롱 받게끔 ‘바보박물관’에 스스로를 박제하게끔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 페미당당은 지난 9월 2일 홍대 부근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성범죄 걱정 없이 즐겁게 교류하는 장, '페미파티'를 주최했다. ©페미당당
페미당당은 다양한 젠더 이슈를 논의하는 페미니즘 세미나,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즐기고 교류하는 ‘페미파티’도 꾸준히 열고 있다. 서울의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을 인터뷰해 사진과 함께 공개하는 ‘페미설(Feminist in Seoul)’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좀 더 강한 힘을 가진 정치적 결사체로 나아가는 방법과 방향성에 대해 꾸준히 모색할 예정”이며, ‘메갈리아 이후 세대 페미니스트’로 호명되는 여러 단체들과 연대체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여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하지 않아도 ‘여자’라는 이유로 광범위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운동하지 않아도 맞고, 해도 맞습니다. 저희는 하고 맞는 편을 택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를 여성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라는 생존 투쟁입니다.” 페미당당은 “(회원들) 각자의 인생도 페미니즘을 알고, 페미당당 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이 아름다워지고 즐거워졌다”며 덧붙였다. “페미니즘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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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호 [사회] (201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