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박명수(가명)씨도 이성 교제 경험이
전무한 30대 총각이다. 성 상담·교육을 진행하는 지난 8주 동안 그토록 냉담하고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강사로 나섰던 김명실 제나가족지원센터
원장은 ‘결혼과 임신’이 주제였던 마지막 강좌 때서야 이유를 알았다. 박씨가 처음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내가 결혼하면 나 같은
애가 나오니까 안 된대요. 그래서 나는 이런 교육이 필요 없어요.” 서울의 한 발달장애인 복지관에서 마주한 외마디 절망에 김 원장은 한참 말을
잃었다. 올 상반기 일이다.
김 원장은 성교육 자체를 반대하는 부모도 적잖이 만난다. 한 전문가의 말마따나 “특히 지적장애의 경우,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몸이 커가는 걸 외면하고 싶어한다. 교육을 하려 하면 왜 가만히 있는 아이를 들쑤시냐고 한다.” 실제 지적장애인(응답
60명)에게 성적 권리 침해 사례를 묻자, 46.7%(28명)가 “성적 욕망을 드러내거나 해소하려다 부모, 선생님, 형제 등으로부터 혼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표2 참조).
하지만 이들은 눈앞에서 성장한다. 가릴 수 없다. 비장애인과 다를 게 없다. 만화가 장차현실씨도 발달장애
딸(21)을 두고 있다. 딸이 17살 때 제 방에서 자위하는 걸 처음 보았다. 2년여 전부터 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10대부터 40대
남성까지 무분별할 정도로 “잘생겼다” “좋다”며 관심을 드러냈다. 지적장애는 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남의 의례적 행위조차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차현실씨는 딸의 첫 자위 때 “기분이 좋더냐”고 물어본 뒤 “사람 없을 때 해야 한다, 문을 닫고 해야 한다”고
일렀다. “정말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감정을) 숨길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도 모른 채 좋다고 하면 미움을 살 수도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 마’가 아니라 ‘어떻게 하라’다. 물론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장애 정도에 따라 내용도, 방식도 다르다. 그러나
전해진다. 초기 일주일에 두세 번 하던 딸의 자위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남짓으로 줄었다. 눈치를 채기 어려울 정도다. 막무가내로 노골적인 감정
표현도 줄었다.
장차현실씨는 “성을 억누르고 차단하는 것보다, 힘들지만 길을 터주고 알려줘야 삶의 모든 판단을 스스로 하고 자립할
힘이 길러진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아주 중요한 행복권을 박탈했을 때 더 큰 부작용이 분명히 올 거라고 믿는다”.
가령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리라. 한 여성 지적장애인은 섹스는 늘 맞고, 그래서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추행과 폭행을 통해 ‘학습’한 성이 전부였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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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 응답자들이 직접 성적 권리나 그에 대한
문제점을 적기도 했다. 한 번도 발설해보지 못한 은밀한 바람들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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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장애인, 이중의 소외
김명실 원장이 부모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내 몸을 알 권리, 나를 표현하고 관계 맺는 것에
대해 알 권리를 부모가 빼앗으면 안 된다. 그러면 위험에 처해도 판단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한다. 나아가 장애인도 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권 옹호다. 그걸 무시하면 인권침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의
인식은 불행해지지 않을 권리에서 행복해질 권리로 확장한다. 그런데도 여러 부모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섹스해서 아기가 생기면
국가가
돕겠느냐고 묻는다(관련기사 “날마다 자식의 욕구와 싸우는 엄마들” 기사 참조).
척수장애를 입은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욕구가 강해지면서 어머니가 자위를 도와줬다.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됐다. 차라리 자신이 거들겠다고 했다. 아내에게 그런 일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절망하며 거부했다. 차마 남자에게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비장애계가 감당할 법한 시선을 장애계는 넘나든다. 깊은 절망 아래 대책없는 갈증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장의 구조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장애계가 감당할 법한 시선을 비장애계는 대개의 무관심과 관심 있는 자의 차별로 넘나든다.
배우자가 없어 성적 소외가 더 큰 뇌성마비·척수손상 미혼 그룹에게
성적 권리 침해 사례를 물었다(응답 74명·복수응답). 29.7%(22명)가 “주변에서 성욕은 인정하지만, 성적 능력은 없을 것으로 본다”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척수손상의 경우 70% 이상이 발기 장애를 겪긴 하지만, 지금은 재활 치료·보조기구 개발
등의 연구가 가장 많이 진척됐다. 장애로 인해 연인과 헤어졌다는 이도 19명이나 됐다. 14명은 아예 성욕조차 없으리란 시선에 고통받고
있었다. 3명은 성욕을 드러내거나 해소하려다가 주변의 면박을 당했다고도 했다.
그래서 남성들은 때로 성매매를 선택한다. ‘성매매 업소를 한 차례라도 이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한
뇌성마비·척수손상 장애인 119명 가운데 13명(기혼자 2명·10.9%)이 ‘그렇다’고 답했다. 성매매를 하는 이들의 내막은 이렇다.
♂ 42살.
척수손상. 미혼. 교제 상대 없음. 1차례 연애 경험 있음. 성욕 8점. 최근 한 달 사이 성관계 0회. 최근의 성행동과 시기 “7년 전
성매매”. 성생활 만족도 “매우 부족”.
♂ 40살. 뇌성마비. 미혼. 과거 4차례 교제한
적이 있음. 성욕 5점. 성적 욕구 불만 5점. 최근 한 달 사이 성관계 0회. 최근의 성행동과 시기 “지난 7월에 성매매”. 성생활 만족도
“보통”.
하지만 차별은 이곳에도 있다. 뇌성마비·척수손상 미혼 그룹에서 성매매를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던 이가 5명, “거부
내지 무시당할까봐 성매매를 하려다 참은 적이 있다”고 밝힌 이가 10명이었다. 주로 장애 남성들이 성적 소외의 대책으로 성매매의 합법화 또는 성
서비스 지원을 요구하는 이유일 것이다.
절망의 갈증, 갈증의 절망이 남성 장애인에게만 있을 리 없다. 여성 장애인은 이중의 차별을 받는다. 장애인 성교육
전문가 조항주씨는 “여성은 장애인으로서 ‘무성’으로 간주되는 1차 차별, 장애계 내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2차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 성적
욕구가 있겠느냐는 것이고, 있어도 여성이 그러면 되겠느냐다.
40살 미혼의 최영희(가명·뇌성마비)씨는 소아마비 장애인 남성과 교제 중이다. 그런데 “상대가 자신의 장애 때문에
성관계를 불쾌해하거나 불편해한다”고 말한다. 최씨가 성생활이 ‘부족한 편’이라고 평가한 이유일 것이다. 최근 그가 택한 성행동은 ‘직접
자위’였다.
비장애인과 결혼한 이지숙(34·가명·척수손상)씨는 설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장애 때문에 남편의 성욕이
떨어지고, 혹시 나에게 나쁘게 적용할까봐 (잠자리를) 일부러 피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가진 잠자리는 1년 전이다.
“장애로 연인과 헤어진 적이 있다”는 김자영(25·가명·뇌성마비)씨는 자신의 성욕을 9점으로 평가했다. 남자친구도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최근 한 달 사이 6~10회의 성관계(애무 이상)를 가졌다. 그런데도 성적 욕구 불만을 10점으로 기입했고, “장애 때문에
성욕을 억누른다”고 토로했다.
정서적 사랑 욕구가 성욕보다 높아
장애인의 성적 권리 보완책으로 성 서비스 이용 합법화를 요구하는 논리가 장애계에서도 거칠게 논쟁되는 이유다.
장애인 성교육 전문가 구자윤(남성·뇌성마비)씨는 “섹스 자원봉사나 성매매 합법화는 장애인의 성과 맞물린 이동권·교육권·취업권·사회참여권 등의
문제를 뺀 채, 욕구 해소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관련기사 “여성의 눈으로 유럽성서비스를 보다”기사 참조).
대개 ‘성·사랑·결혼’은 동행한다. ‘성욕’으로 인한 고통은 ‘사랑’에 대한 허기, 사회인으로서의 결핍에
가닿는다. “성행위는 단순한 육체적 또는 생리적 행위가 아니고 인간관계를 포함하는 사회적 행동”(신용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이란 관점이 잘
설명한다.
실제 뇌성마비 미혼 그룹에선 5명 중 3명꼴(28명·63.6%)로 현재 연애를 하지 못하거나 않고 있다.
27.3%(12명)는 평생 교제 경험이 없다고 밝혔다.
욕구가 없는 탓은 아니다. 세 장애 전체 미혼 그룹(응답 155명)에게 정서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구를
점수(10점 만점)로 묻자 6.66점이 나왔다. 섹스보다 사랑이다. 이미 살펴본 장애인 전체의 성욕 지수(5.66점)보다 1점이 높다. 뇌성마비
6.79점, 척수손상 6.38점이었다. 지적장애인도 다르지 않다. 7.24점. 되레 가장 높다. 배우자가 없는 전체 미혼 그룹 장애인의
47.7%(74명)가 8점, 9점, 9.5점, 10점을 간절하게 눌러 썼다. 한국장애인문화협회 상담실로 걸려오는 하루 20건 남짓의 전화 중
9할은 “결혼하고 싶다”다.
대안을 살펴보자. 장애 당사자가 안다. 세 장애 전체 응답자 중 가장 많은 82명(복수응답)이 “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대한 일반 사회의 인식 개선”부터 요구했다. 시선만 바로 서도 좋겠다는 얘기다. “성 재활 의료 및 상담 서비스 지원 확충”(54명)이
두 번째다. 24명(여성 3명)은 “성 서비스 이용 합법화”도 요구했다. 지적장애 그룹에선 가장 많은 28명이 “전문가와 좀더 자유롭고 편하게
성 고민을 나눌 여건”을 바랐고, 15명은 “누군가가 성적으로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표3참조)
구근호 소장은 비장애인의 성적 장애도 다양한데, 장애인의 성만 부각해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마뜩잖다.
신용호 소장은 이들의 주문에 국가가 대답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보편적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데 일반적 성 장애도 문제지만 특히
장애인의 것은 신체장애로 비롯된 ‘2차적’ 성적 장애란 점에서 다르고 그 지점에 국가가 개입해야 할 여지가 생긴다.”
사실 국가야말로 오래전부터 이유를 알고 있다.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내용이다.
제29조 1항: 모든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장애인은
이를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제29조 2항: 가족·가정 및 복지시설 등의 구성원은… 성생활을 향유할 공간 및 기타 도구의 사용을 제한하는 등
장애인의 성생활을 향유할 기회를
제한하거나 박탈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0조 3항: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성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차별적 관행을 없애기 위한 홍보·교육을 하여야 한다.
도덕적 성교육을 넘어야
조항주씨는 당장 작고 구체적인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은 지적장애인을 위한 피임법과 러브호텔 이용법을 가르친다. “우린 지나치게 도덕적이다.” 관련 실태 조사나 연구
자체가 희박하므로 성 전문 연구기관도
요망된다. 지역 복지시설과 연계해 “장애 유형과 성별 등에 따른 맞춤형 성교육 서비스가 의무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본다(관련기사 “만나고
토론하고 사랑하라”기사 참조).
장차현실씨의 딸은 올해부터 인터넷에서 ‘섹스’를 찾고 있다. 지난해까지 ‘키스’나 검색한 게 고작이었다. “섹스가
어떤 거야?” 묻기도 한다. 반가운 변화가 선행했다. 지난해 가을
석 달 만에 몸무게의 15kg을 줄였다. “이성한테 잘 보이려고 제 몸에 신경 쓴 덕분이다.” 이제 딸은 “살 뺐는데 왜 남자는 안 생겨?”라고
묻고, 엄마는 “(섹스)해보고 싶어 죽겠지?”라고 놀린다.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온전히 신뢰하는 데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 적은 글귀는
명백하다. 거짓이 없다. 성적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한 여성 지적장애인(24)이 점수 대신 한 줄 문장을 남겼다. “남자친구랑 좋았다. 다른
사람과는 안 좋았다.” 또 다른 여성 지적장애인(24)은 설문 끝자락에 제 바람을 적었다. “남자친구랑 손잡고 놀이동산 가고 싶어요.”
다들 행복하고 뜨겁게 숨 쉬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