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안돼요” “성교육 필요해요”
서울 금천구 초중고생 80여명, ‘아동친화도시’ 토론서 의견 쏟아내 “엄마가 스마트폰 몰래 안봤으면”, “부모와 대화 프로그램 생겼으면”
“청소년들에게 피임법을 의무 교육해야 합니다.”
최근 서울 금천구가 개최한 ‘아동친화도시’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의견을 낸 사람은 중학생이다. 청소년의 성욕을 무조건 억누르는 것보다 올바른 피임법을 가르치는 게 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였다. 한 고등학생은 “성생활은 청소년기에 해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다수 어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 성교육의 방향과 실제 청소년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동친화도시 토론회는 청소년들이 실제로 원하는 변화가 무엇인지 듣기 위한 자리였다. 아동친화도시는 유니세프가 인증하는 ‘만 18세 미만 청소년·아동이 살기 편한 도시’다. 유니세프는 ‘아동의 참여’, ‘아동친화적 법체계’, ‘아동 안전을 위한 조치’ 등 아동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10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세계 각국 도시들을 평가해 아동친화도시로 인증한다. 지난달 기준 한국에서는 서울 종로구, 부산 금정구, 충북 충주시 등 30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인증을 받았다. 현재 금천구를 비롯해 50여 개 지자체가 인증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부산시 등도 광역자치단체 단위에서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금천구 토론회는 초중고생 80여 명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보건과 사회서비스 △안전과 보호 △놀이와 여가 △가정 환경 △교육 환경 △참여와 시민권 등 6개 영역으로 나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성교육에 대한 의견이 포함된 보건과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많은 초등학생들이 성희롱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난처럼 말하는 성희롱 발언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금천구 관계자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등 성범죄에 대한 이슈들을 초등학생들도 많이 접하면서 문제의식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건과 사회서비스 영역과 함께 초등학생들이 많은 의견을 낸 분야는 안전과 보호였다. 주최 측은 어린 학생들인 만큼 놀이와 여가에 많은 관심을 둘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였다. 잇따르는 안전사고와 아동 대상 범죄를 초등학생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구체적 발언에는 ‘기름걸레로 컬링 따라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같은 실제 경험에서 나온 의견이 눈길을 끌었다. 초중고생 모든 그룹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은 ‘부모가 간섭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스마트폰을 몰래 살펴보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또 한 고등학생은 ‘부모가 되기 전에 의무적으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술주정을 부리는 부모는 자식이 원하면 꼭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법도 나왔다. 반면 대다수 청소년들은 부모와의 대화에는 목말라하고 있었다. 한 중학생은 ‘부모와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루에 30분 또는 1시간씩을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으로 정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청소년들이 부모 간섭을 싫어하면서도 대화는 원하는 것은 독립된 주체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사회적 참여 욕구로 이어진다. 참여와 시민권 영역에서 참가 학생들은 ‘학교 건물을 짓거나 바꿀 때 학생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제안부터 ‘교육부 장관 선출에 청소년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방면으로 참여 욕구를 나타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출처]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80909/919056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