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 결과와 과제’를 보면, 성인 여성 1017명 중 188명이 “연인한테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경찰 신고로 이어진 건 16%(30명)에 불과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본 결과 ‘신고할 정도로 폭력이 심하지 않아서’(33.8%)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17%), ‘신고나 고소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9.8%) 등이 뒤를 이었다. ‘가해자의 보복이나 협박이 두려워서’ 신고를 못했다고 대답한 비율도 4.5%에 달했다.
지난해 1월엔 서울 강남구에선 30대 남성이 여자친구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경찰에 연행됐다가, 풀려난 지 3시간 만에 여자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행이라 피해자들이 사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도 큰 것도 신고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가정폭력방지법’을 통해 배우자 폭력은 가정폭력으로 처벌 대상이 되지만, 혼인관계 이전 연인에 의한 폭력은 일반법 외 처벌 근거가 사실상 없다.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할 경우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그친다.
설령 지속적 괴롭힘이 있어도 성폭행과 치명적 폭행 같은 현행법상 범죄가 발생하기 이전 단계에서는 경찰도 미리 개입하는 게 어렵다.
◆지속적인 괴롭힘 당해도 10만원 이하 벌금?
그렇다면 선진국의 사정은 어떨까. 해외에서는 데이트폭력 범죄에 대해 엄벌에 처하고 있다.
영국은 2014년부터 ‘가정폭력 정보공개제도(일명 클레어법)’를 시행, 데이트 상대의 폭력 전과를 공개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정보 공개는 각종 심사단계를 거친 뒤 지역정보공개결정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이뤄진다.
미국은 1994년 제정된 ‘여성폭력방지법’을 통해 데이트폭력을 여성 폭력으로 규정하고, 피해자 구제제도를 강화해왔다. 가정폭력에 적용하던 ‘보호명령’ 제도를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에도 확대 적용해 추가 폭력을 방지하고 있다.
일본은 2013년 ‘가정폭력 방지법’을 개정해 가정폭력의 범위에 데이트 상대까지 포함시켜 해당 법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하는 폭력이나 협박 행위는 보호명령 대상이고, 가해자의 직접 접근뿐 아니라 전화나 팩스, 이메일 등을 사용한 행위도 접근금지 명령 대상이 될 수 있다.
◆옛 연인 성관계 사진·영상 온라인에 공개, '디지털 성범죄' 급증
상황이 이렇자 데이트폭력 관련 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정의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일선 경찰이 정신적, 언어적 폭력에 관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 옛 연인 등의 성관계 사진이나 영상 따위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발생했지만, 최근에야 사회적 이슈가 됐다.
2012년부터 2016년 8월까지 4년8개월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개인 성행위 관련 영상 1만113개에 대한 신고가 접수됐다. 방심위는 심의를 거쳐 영상을 지우거나 해당 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 조치를 취하지만 실효성이 낮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동영상 삭제 전문업체를 찾기도 한다.
타인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해 온라인에 공개하는 ‘몰래카메라(몰카)’ 범죄는 2011년 1523건
에서 2016년 5185건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