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가족부와 북유럽 4개국(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은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북유럽 양성평등정책포럼을 열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전 세계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성평등을 이룰 경우, 10년 뒤 최대 28조 달러의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난해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 보고서 내용이다. 대학 진학률에서 여성이 남성을 추월하고, 직장과 정치권에서도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시대다. '이제 성평등은 이뤄진 게 아니냐'는 남성들도 늘었으나, 여성들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험난한 레이스에 임하고 있다. 역대 최고치라지만. 지난해 기준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고작 55.7%다. 2017년까지 모든 정부위원회 여성 참여율을 40%로 의무화하는 법이 시행 중이나, 현실은 36.1% 수준이다. 저성장과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노동 시장의 성 불평등도 심화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1월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일자리가 줄어들수록 성별 격차도 심해져, 여성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여성가족부와 북유럽 4개국(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 공동 주최로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북유럽 양성평등정책포럼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각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여성인재 활용과 여성관리자 확대를 위한 정책사례’를 주제로 열린 이 날 포럼엔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4개국 대사와 기업·학계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북유럽 양성평등정책포럼에서 민무숙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한국 여성은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기회의 평등’을 성취했지만, 기회의 평등이 모든 문제를 해소하진 못했습니다.” 민무숙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이날 기조강연에서 한국 여성들이 취업·노동시장에서 경험하는 성차별에 대해 설명했다. 많은 여성들이 젠더 편견과 성차별적 문화 때문에 특정 전공 분야를 피한다. 올해 일반대학 재학생 중 여성 비율이 40.6%인데,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진 공학 계열의 여성 전공자는 17.6%뿐이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선 여성 인력 이탈 현상이 눈에 띈다. 지난해 소프트웨어(SW) 분야 학위 취득자 중 여성은 18.84%, 해당 분야에 진출한 여성 인력은 12.5%뿐이었다.
노동시장의 성차별도 심각하다. 지난 10년간 한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유리천장이 단단한 나라로 꼽혔다. 장시간 근로를 강요하는 경직된 조직문화와, 고용 평등·모성보호, 일·가정양립제도조차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사용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여성들이 오래 버티기란 어렵다. 지난해 조사 결과 기혼 여성의 45.3%가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여성 경력단절로 인한 사회적 손실 규모는 연 15조로 추정된다. 여성 정책 전문가들은 여성이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저성장·초저출산·고령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민 원장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남성과 같은 수준으로 증가한다면 경제활동 인구는 18% 증가할 것”이라며 “저성장·초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법은 여성 인력 활용에 달렸다”고 말했다.
▲ 발언 중인 패트릭 요한슨 에릭슨-LG CEO ©이정실 사진기자
▲ 발언 중인 페르닐 라븐 야콤센 덴마크남부대학교(SDU) 의료기술혁신센터 박사 ©이정실 사진기자
이어진 북유럽 4개국 사례 발표에서도 여성 인재 활용과 ‘다양성’(diversity) 증진이 조직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진단이 나왔다. 패트릭 요한슨 에릭슨-LG CEO는 “다양성과 통합(inclusion)이 더 경쟁력 있는 조직을 만든다”고 단언했다. 그는 “고위직에 여성이 많은 기업일수록 더 높은 영업이익과 상장주식 시가총액을 기록하는 경향이 있다. 젠더·성적지향·인종 등을 불문한 다양한 직원들의 조합이 동질성을 가진 직원들보다 더 혁신적인 결과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관건은 “CEO부터 성평등·다양성 기조를 명확히 세우고, 이를 인사 제도에 포함해 개인의 업무 능력에 기초해 평가하고 보상을 주는 것”이다.
교육 기관과 기업이 여성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육성하고, 여성 역할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중요하다. 페르닐 라븐 야콤센 덴마크남부대학교(SDU) 의료기술혁신센터 박사는 “여성이 연구와 혁신의 교차점에 더 많이 동원된다면 엄청난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이 이야기를 통해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동화책 『Hello Ruby』 저자 린다 리우카스 씨(핀란드)는 “젠더를 떠나 다양한 이들이 모여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그러한 문화 속에서 공부하고 상상하고 토론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한편, 남성들에게 왜 성평등이 중요한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라일라 보카리 노르웨이 외교부 차관은 “가정과 직장 모두에서 진정한 성평등을 원한다면 여성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아버지의 역할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요한슨 CEO도 “성평등과 다양성은 조직이 진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며 “문화를 바꾸려면 긴 시간이 걸리지만, 남성 육아휴직 장려, ‘칼퇴근’과 근무 탄력성(work flexibility) 보장 등 정책을 시행해 남성들도 성평등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발언 중인 『Hello Ruby』 저자 린다 리우카스 씨 ©이정실 사진기자
▲ 발언 중인 라일라 보카리 노르웨이 외교부 차관 ©이정실 사진기자
이어진 토론에서 임희정 한양사이버대 인사조직·전략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고용평등·모성보호, 일·가정양립제도는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인데, 기업의 인식이 후진적이라 현실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에선 이런 제도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 근로자들의 부담도 덜어줄 제도임을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민 숙명여대 여성인적자원개발대학원 교수는 “관련 제도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 언론 홍보를 통한 인식 제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은희 여가부 장관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남성 노동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여성인력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저성장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며 “양성평등한 사회 실현은 우리 모두의 행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여가부와 북유럽 4개국은 이날 포럼에 앞서 ‘양성평등 협력 및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향후 다각적 협력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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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8호 [세계] (2016-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