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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로드걸·치어리더 성추행 사건 잇따라
문제제기하는 여성에 “복장이 성추행 유도했다” “직업정신 없다” 반응도
▲ 12월 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영건즈31’ 라이트급 승자인 박대성 선수가 기념촬영 중 로드걸 최설화 씨의 허리를 끌어안아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MBC 스포츠플러스 영상 캡처
종합격투기 경기가 끝나고 기념 촬영 중, 남성 선수가 옆에 선 로드걸(종합격투기 경기 중 매 라운드 회수를 알리고 대회를 홍보하는 여성)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았다. 당황해 몸을 빼는 여성을 남성이 재차 끌어당겼다. 지난 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영건즈31’ 라이트급 승리 후 성추행 논란을 빚은 박대성 선수와, 당시 로드걸이었던 모델 최설화씨 이야기다.
논란이 커지며 온라인상 ‘2차 피해’도 이어졌다. 최씨는 11일 “승리에 대한 표현도 좋지만 온종일 고생하시는 로드걸 분들 배려해주셨으면 더 진정한 챔피언 되셨을 것 같아요”라는 글을 SNS에 올려 조심스레 불편함을 표현했다. 이어 이런 댓글들이 다수 달렸다. “로드걸이 하는 일이 원래 선수들이랑 포토타임에 스킨십하며 사진 찍는 건데.... 직업정신이 없는 거지 뭐야? 불편하면 관두면 그만 아니냐?” “팔짱 끼고 사진 찍는 게 뭐 그리 유세라고, 그걸 갖고 징계위 회부까지 될 일을 만드는 당신은 뭐 그리 잘난 사람이길래....”
▲ ©최설화 씨 인스타그램 댓글 캡처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한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쉽게 대상화·상품화된다. 로드걸·치어리더처럼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일하는, ‘젊고 예쁜’ 여성은 ‘마음대로 성희롱·추행해도 되는 존재’로 거론된다. 이들의 정당한 문제 제기마저 “프로답지 못하다”며 왜곡·폄하하는 일부 남성들의 후진적 젠더 인식이 이번 논란을 통해 다시 드러났다.
최근 야구장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을 두고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지난 10월1일, SK 와이번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에서 한 남성이 SK와이번스의 치어리더를 성추행해 경찰에 입건됐다. 관련 기사엔 “치어리더 복장이 남자의 성욕을 자극하는 건 사실” “(치어리더들은) 옷도 반만 걸치고 흔들면서, 자세히 보면 수치심을 느낀다고 성추행 운운하면 폐지해야 하는 게 아닌가” 등 댓글이 달렸다.
“댓글 보다가 질려서 저희가 나온 단순 사진 기사도 잘 안 봤어요. 현실에서도 저런 말들과 시선을 많이 접했죠.” 전직 프로야구 치어리더 A씨는 “치어리딩이 좋았지만 야구팬, 야구 쪽 종사자들도 치어리더를 어엿한 전문직업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고깃덩어리처럼 보더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형처럼 여기는데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 2014년 10월 11일 방송된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세바퀴'에 출연한 박기량 씨가 자신이 경험한 성희롱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세바퀴' 영상 캡처
열악하고 안전하지 않은 근로 환경도 문제다. 잠실야구장의 경우 치어리더 탈의실이 없어서, 치어리더들은 화장실을 대신 이용한다. 보안도 취약하다. 일부 남성들이 치어리더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대기하다가 기습적으로 기념촬영을 요구하거나 ‘몰카’ 촬영을 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잠실야구장이 홈구장인 LG트윈스 측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성추행) 사건은 우리가 중간에 나설 필요도 없다. 지하철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것이랑 마찬가지다. 성추행범이랑 성추행당한 사람이 경찰 불러서 서로 해결할 문제”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부당한 대우나 폭력 앞에서, 스포츠 분야의 여성 노동자들은 대개 침묵하거나 무시하는 방법만을 택했다. 이들의 문제는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았거나 이내 수면 아래로 잠겨 버렸다. 지난해 9월, 프로야구 치어리더 박기량 씨가 자신에 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KT 소속 야구선수 장성우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한 말이 큰 울림을 남긴 이유다. “용서를 하고 싶지도, ‘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허무맹랑한 내용에 여성으로서 수치스럽지만,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구장에는 치어리더와 리포터, 배트걸 등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모두들 야구를 사랑하며 가슴속에 ‘야구인’이라는 단어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 혼자 용서를 해버리면, 그들 전체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만들 수 있다.” (►관련기사 : 일간스포츠 [단독인터뷰] 박기량 “장성우 용서, ‘하고 싶지도’·‘해서도 안되는’ 것”)
전직 프로야구 치어리더 A씨의 말은 스포츠 여성 노동자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여성은 ‘꽃’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하고, 여성들도 그 사실을 분명히 자각해야 상황이 개선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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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호 [사회] (2016-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