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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경춘선전철 종점과 홍등가의 '민망한' 만남 2016-06-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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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불구 춘천 ’난초촌’ 8년째 ’영업’
업주 “생계대책 마련해 줘야”..市 “별도 재개발계획 없어”

“홍등가 여성과 밤손님의 민망한 만남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지…”

춘천을 명실상부한 수도권으로 진입시킨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된 지 한 달을 앞둔 지난 19일 밤 10시 춘천시 근화동 성매매 집결지인 일명 ’난초촌’.

새해 벽두부터 몰아친 한파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도 이곳 홍등가는 여전히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다소 이른 시각 탓인지 영업중인 15개 업소 가운데 불을 밝힌 업소는 어림잡아 8~9곳.

업소당 1~2명의 여성 종업원들이 붉은 조명 속 유리창 너머로 영업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하지만 홍등 속 여성 종업원들은 한여름을 방불케 할 만큼 최소한의 옷만 걸친 채 연방 지나가는 차량과 행인을 향해 웃음과 손짓을 멈추지 않았다.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였던 서울 전농동 속칭 ’청량리 588’과 하월곡동 ’미아리 텍사스’가 차례로 폐쇄되면서 서울의 밤거리에서조차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

이제는 낯설어진 이 풍경은 놀랍게도 경춘선 전철의 종착역인 춘천역에서 불과 400~500여m 떨어진 곳, 보통 걸음으로도 10분 정도 거리에서 버젓이 야릇한 불빛을 흘리고 있다.

모처럼 주말을 이용해 전철을 타고 춘천을 찾아와 닭갈비와 막국수로 저녁식사를 한 뒤 ’소양강 처녀상’을 둘러보고 다시 춘천역으로 이동하는 전철 관광객들은 난초촌 거리의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경춘선 개통 직후 이곳을 지나던 관광객 문모(56.여.서울 화곡동)씨는 “소양강 처녀상과 의암호를 둘러본 뒤 무심코 분홍빛으로 물든 거리를 들어섰는데 도심에 아직까지 집창촌이, 그것도 대낮에도 영업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혼비백산했다”며 충격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50대 중반의 포주는 “성매매특별법이다 뭐다 시행한 뒤로는 워낙 영업이 되지 않아 정말 죽을 맛이다”며 “폐쇄됐던 춘천역이 다시 문을 열고 전철 관광객이 늘다 보니 개통 초기 2~3일간은 사실 낮에도 영업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40대 초반의 또 다른 포주가 “하지만 노인분들도 많이 다니고 관광객들의 시선도 그렇고 해서 업소에서 자진해서 중단했어요. 지금은 절대 낮 영업은 안 해요”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난초촌 거리 중간지점을 지날 즈음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금자동인출기’가 눈에 띄어 그 용도를 묻자 “현금이 부족한 밤손님을 위한 배려”라고 귀띔해줬다.

춘천 난초촌은 해방 후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생겨나 소양로의 옛 ’장미촌’과 더불어 1960대부터 70년대까지는 호황을 누렸다는 게 포주들의 설명이다.

이후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전까지만 해도 난초촌은 30여개 업소에서 100여명의 종업원이 성업 중이었다.

그러다 2005년 10월 경춘선 무궁화 열차의 종착역이던 옛 춘천역이 폐쇄되고 이어 미군기지가 폐쇄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춘선전철 종점과 홍등가의 낮 풍경. 지난 19일 춘천시 근화동 성매매집결지인 일명 '난초촌'의 낮 거리. 경춘선 전철 종착역인 춘천역과 불과 10분 거리인 이곳은 수도권 전철 관광객이 점차 늘면서 관광 춘천의 이미지를 해친다는 목소리와 함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소양로 ’장미촌’은 춘천 소양동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미 지난 2006년 4월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난초촌은 2005년 10월 성매매집결지 폐쇄정책의 하나로 NGO 단체의 자활상담 중 불거진 여성종사자들의 집단반발 사태가 업주 등의 생존권보장요구 시위로 확산되면서 존폐 논란이 보류된 채 휴화산처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난초촌 포주와 종업원들은 춘천의 관광 이미지 훼손이나 장기적 측면에서 폐쇄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듯했다.

당장 내년 3월 미군 캠프페이지 개발 사업이 착수돼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난초촌 앞 담벼락이 허물어지면 그나마 근근이 이어가던 영업에도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 당국에서 납득할 수 있는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는 한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도 있었다.

50대 중반의 포주 C씨는 “포주들이 호황을 누린 것은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일 뿐 지금은 먹고 살기도 어려워 식당에 아르바이트하러 다닐 정도”라며 “갑과 을이 뒤바뀌 듯 업소 내 여성 종업원들 밥 해먹이고 뒤치다꺼리 하다 보면 식모생활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장사도 안되는데 힘든 영업을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C씨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무런 생계대책 없이 어쩌겠느냐”며 막막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렇다고 춘천시도 이렇다 할 묘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춘천시 한 관계자는 “탈 성매매 및 자활사업 등의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미군 캠프페이지 개발이 본격화되면 자연 소멸될 것으로 생각될 뿐 별도의 난초촌 재개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청룡 춘천시의원은 “수도권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춘천역과 가까운 난초촌이 춘천의 이미지를 저해된다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이제는 춘천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난초촌 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때가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시가 난초촌 주변의 사유지와 철도청 부지를 매입하거나 그들의 생계대책을 심각하게 고민해야지 대책없이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전국에서 얼마 남지 않은 성매매 집결지인 춘천 난초촌 해법이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홍등가 불빛 아래 여성 종업원과 밤손님, 그리고 이곳을 지나는 무수한 관광객의 민망한 만남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도 난초촌 거리에는 밤이 깊어 갈수록 1~2명의 남성이 흔들거리는 홍등가 불빛 아래서 유리창 너머의 여성들과 무언가 귀엣말을 나누고 있었다. 

출처:조선일보 : 2011.01.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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